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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조의 경제성인가 국민 안전인가: '성분명 처방'을 둘러싼 격돌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나영균 교수는 성분명 처방 의무화 등을 통해 연간 약 13조 5,000억 원의 약제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현재 우리나라의 1인당 약제비는 OECD 평균보다 약 47%나 높은 실정이며, 이는 특정 브랜드명을 지정하는 상품명 처방 관행에 기인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성분명 처방이 의약분업의 대원칙을 파기하는 행위이자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치명적 도박이라며, 제도 강행 시 의약분업 백지화까지 불사하겠다는 초강수 대응에 나섰다.
1. 폭증하는 국민 약제비: OECD 평균을 상회하는 한국의 현실
대한민국의 약품비 지출 규모는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11년 13조 원대에 머물던 지출액은 2024년 기준 27조 원으로 두 배 이상 폭증했다. OECD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우리 국민 1인당 약제비는 OECD 평균인 658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969달러에 육박한다. 이는 한국 보건의료 체계 내에서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비대해졌음을 의미하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재정적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2. '상품명 처방'의 굴레와 제네릭 가격 장벽의 구조적 문제
학계에서는 높은 약제비의 원인으로 의사가 특정 제약사의 제품명을 직접 지정하는 상품명 처방 관행을 지적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복제약(제네릭) 가격이 오리지널의 약 53.5% 수준에서 하한선처럼 고착화되어 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가격이 급락하는 해외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브랜드 지정권이 의사에게 집중되어 있어 제약사들이 가격 인하 경쟁보다는 마케팅 경쟁에 치중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동일 성분의 저가 약으로 대체되는 대체조제율은 0.79%라는 처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3. 13.5조 원 절감의 청사진: 성분명 처방과 참조가격제 도입
나영균 교수는 성분명 처방 의무화와 더불어 참조가격제, 제네릭 경쟁입찰제의 패키지 도입을 제안했다. 특정 상품이 아닌 '성분'으로 처방할 경우, 약국에서는 환자에게 동일 효능의 저렴한 약을 권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이를 통해 제약사 간의 실질적인 가격 경쟁을 유도한다면 연간 약 13조 5,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국민의 본인 부담 경감으로 이어지는 경제적 선순환의 핵심 열쇠로 제시되었다.
4. 의사협회의 거센 반발: "국민 건강권 담보한 위험한 실험"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입장은 단호하다. 의협은 성분명 처방이 의사의 고유 권한인 처방권을 침해하며, 조제와 복약지도를 구분한 의약분업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특히 동일한 성분이라도 제조 공법에 따라 생체 이용률과 임상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고령자나 중증질환자에게는 이러한 '미세한 차이'가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논리다. 김택우 회장은 제도 강행 시 의약분업 전면 백지화를 선언하며 배수의 진을 쳤다.
5. 의약정 합의와 사회적 합의 사이: 향후 과제와 정책적 함의
결국 이 논쟁은 '효율성'과 '안전성'이라는 가치의 충돌이자, 처방 주도권을 둘러싼 직역 간의 갈등이다. 성분명 처방이 재정 절감의 강력한 도구인 것은 분명하지만, 의료계가 우려하는 약품의 질 관리와 책임 소재 명확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단순히 수치상의 절감액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의 신뢰도를 높이고 환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하는 촘촘한 제도적 설계를 통해 갈등의 실타래를 풀어야 할 것이다.